Reflexion Ete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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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마이가든



City of Dreams

네바다 주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라스 베가스는 황량하고 어두컴컴한 사막하늘을 외롭게 밝히고 있다. 이 곳은 10월이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후덕지근하다. 저녁의 이 시간 온도가 섭씨 30도를 훌쩍 넘는다. 하루종일 달구어진 사막 지면에서부터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이 시내를 스쳐지나간다. 카지노와 호텔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부터 화려한 네온 사인들이 라스 베가스 블레바드, 일명 ‘스트립’을 가운데로 두고 양쪽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길가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끊임없이 밤을 쫒으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 보인다. 동양인, 중동인, 유태인, 흑인, 관광객, 길거리 상인, 프로모터, 총각파티, 소매치기꾼, 사기꾼, 창녀, 종교인, 경찰, 주민 등등 복합적이고 다이내믹한 인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곳은 어느 누구와도 완벽한 낯선이가 될 수 있고, 어느 누구와도 친한 벗이 될 수 있으며, 가장 자기 자신이 허용되는 곳이고, 또한 평소와 전혀 다른 또다른 내가 되어도 되는 곳이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매춘이 허용되는 곳이고 결혼법이 가장 수월한 곳이며 실내에서도 흡연이 가능하기도 하다. 종종 한 손에 버젓이 마가리타나 맥주를 들고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신비스러운 이 곳을 마치 Aldous Huxley의 Brave New World에서 미개인이 유토피아의 문명 세계에 도달하였을 때의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는 유치한 하와이의 훌라 스커트와 코코넛 브라를 한 웨이트레스에게 신호를 하여 내 앞에 있던 오반 위스키 한잔을 더 시킨다. 라스 베가스 블레바드의 길가의 페티오에 앉아 있자니 축제 분위기의 나도 모르게 감염되는 듯 싶다. 나는 출장의 모든 일정도 끝났겠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다리를 쭉 뻗고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댄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제대로 놓을 수 없다. 나는 위스키잔에서 얼음을 꺼내 입에 넣고 깨물어 부신다. 손목의 시계를 내려다 보니 8시가 막 지나고 있다. 이제 곳 그는 나타날 것이다. 전화를 통해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중년의 남자 목소리와도 같았다.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네바다 주는 미국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다고도 한다. 내가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가 후회해본다. 지금이라도 자리를 일어나서 나가면 모든 것이 없던 일로 할 수도 있다.

일단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한 발자국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과거로 거슬러 가보자. 때는 초등학교 시절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번씩 사회수업을 들었다. 당시 사회 선생님의 이름은 미스 애비게일이었다. 그녀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정도의 덩치가 어느정도 좀 있으시고 무서웠던 여인로 기억된다. 그녀는 선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학생에게는 가참없이 벌을 내리셨고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려는 노력 조차 하지 않으셨다. 수업 밖에서는 우리와 말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신 적이 없을 정도로 차가우신 분이였다. 하지만 그녀의 수업만은 흥미로웠다. 우리는 주로 미국의 문화와 역사를 다루었고, 지역의 이름과 특징에 대하여서도 배웠다. 나는 특히 미국의 여러 지역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녀의 가리키는 방식은 교실의 한 쪽 벽에 큰 부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전지도의 한 곳을 가리키고 그 곳에 관한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자세한 부연 설명을 해주시는 것이었다. 멀티미디어 시스템도 없었고 오버헤드 프로젝터도 없었지만 지도와 사진들을 보며 나는 이 좁은 교실 내에서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기분이었고 눈에 보이는 내 주변 환경 말고도 까마득히 먼 곳에도 우리와 같이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신비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유타의 설트 레이크 스프링에 대하여서도 배웠고 미드웨스트의 미시시피 강에 대하여서도 배웠다. 로드 아일랜드의 뉴포트 시에 대하여 배울 때 어마어마한 역사적 저택의 사진들을 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느 하루는 라스 베가스에 대하여 배웠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에 라스 베가스는 서쪽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라던지 기차길의 마을로 번창했다던지에 대하여서 배웠다. 그리고 도박이 합법화 되면서 부터 카지노 산업이 커지게 되면서 지금의 라스 베가스가 형성된 것에 대하여 배웠다. 애비게일 선생님은 라스 베가스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이루어 주는 ‘꿈의 도시’라고 일컬인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 당시 그녀가 왜 ‘죄악의 도시’, ‘두번째 기회의 수도’, ‘유흥의 캐피탈’ 등과 같이 수많은 수식어 중에서도 꿈의 도시만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이후로도 우리가 라스 베가스에 대한 주제가 떠오늘 때면 그녀는 항상 꿈의 도시라고 부르곤 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당시 어린 마음에 라스 베가스란 도시는 산타의 엘프와 같은 특정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세계 사람들의 꿈을 상담하여 주고 현실화 시켜주는 곳이라고 이해하였었다. 하긴 누구도 혼자의 힘으로 소꿉장난과 공놀이로 이루어진 아동의 세계에서 비행기를 만들고 건물을 지으며 사람의 병을 고치는 어른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두 세계의 거리는 비현실적으로 멀어 보였다. 세계의 어느 곳에선가 이러한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관이 있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설명으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정확히 어떠한 방식으로 꿈이 현실화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고 나의 꿈을어떻게 그들에게 알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로지 나에게는 내 꿈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밖에 없었다. 미스 애비게일께 여쭤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부모님께 여쩌보았을 때 그들마저 속이 시원한 해답을 주시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그날 이후로 나는 무작정 라스 베가스의 주소를 찾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이 없던 당시에 이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였다. 신문과 잡지, 엽서, 지도, 책, 티비, 전화번호부를 뒤져가며 라스 베가스의 주소를 찾으려 하였다. 어느 하루 나는 한 도서관에서 우연히 라스 베가스의 화이트 페이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몸뚱아리 만한 무겁고 두꺼워서 들기조차 힘든 책을 나는 도서관의 한 구석 바닥에 앉아서 들쳐보기 시작하였다.

나는 라스 베가스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을지 몰랐었다. 그리고 이 많은 숫자의 사람들은 모두 라스 베가스의 주소를 가지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희망과 꿈을 이루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인가. 한 사람의 꿈을 성취하게 해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혹시나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이도 있을까 하여 찾아 보았다. 흔하지 않은 이름이기에 나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단 한명있었다. 바로 옆에 씌여있는 주소는 ‘403 W Maryland Pkwy. Las Vegas, NV 89121’이었다. 나는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주소를 옮겨적었다.

나는 그날 저녁 내 방에서 부모님 몰래 편지지에 나의 소개와 편지를 쓰게된 내역과 나의 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한참 써내려가다 보니 교회에서 배운 기도의 형식이랑 비슷하게 되어가는 듯도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보면 교회에서 섬기는 하나님과 그리 다를 바도 없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열씸이 써서 끝내었을 때에는 한장의 편지가 다득 메꾸어져 있었다. 나는 거실에서 예전에 보았던 편지 봉투들과 우표가 보관되어 있는 서랍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와서 내 편지를 조심히 접어 넣었다. 봉투를 봉할려는 찰라에 나는 이들은 아마 나와 같은 편지를 수도 없이 많이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기에 손을 멈추었다. 나는 내 사진 앨범에서 내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봉투에 담았다. 내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고 뒤로는 노란 석양이 지고 있는 내가 아끼는 사진이었다. 그리고는 편지 봉투를 단단히 봉하고 책가방 속에 넣어 두었다.

다음날 나는 어머니께서 학교로 데려다 주는 차의 뒷좌석에 앉아서 창문 밖을 바라보며 열씸히 빨간 우체통을 찾았다. 평소에는 그리 많아 보이던 우체통이 오늘따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운전을 하시며 나에게 계속하여 말을 하셨지만 나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기어코 나에게 뭘 그리 보고 있냐고 물으시는 찰나에 나는 빨간 우체통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어머니께 지금 당장 차를 세워야한다고 절박하게 애걸하였다. 어머니는 내가 차멀미를 하는 것인지 아시고 차를 당장 길가로 세우셨다. 나는 책가방을 들고 재빨리 우체통으로 뛰어가서 편지를 넣고는 차로 돌아왔다. 어이둥절한 표정으로 차 밖에서 나를 바라보며 기다리시는 어머니에게 나는 꿈의 도시에 편지를 보내야 했다고 어머니는 이해 못하실 것이라고 설명드렸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원하였던 모든 말을 그 한 편지에 전부 담지 못하였다는 것을 깨닳았다. 그리하여 나는 내 꿈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한 편지를 보내고 나면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기에 나는 새로운 편지를 써 보내곤 하였다. 학교 근처에도 빨간 우체통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로는 이러한 절차가 한결 수월해졌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매일 집의 편지함으로 직행하여서 나에게 온 것은 없나하고 확인하곤 하였다. 하지만 나는 실망스럽게도 동명의 그 사람에게서 온 답장은 매번 없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다른 이에게 보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바쁜 것인가하고 추정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모님은 나의 이러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고 내가 잠이 들곤 하면 내 편지도 확인하셨다곤 한다. 요즘 세상에 초등학생 자식이 온라인에서 누구와 채팅을 하는지 부모가 알아야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었다. 그 당시 부모님은 나 몰래 편지함에 답장을 넣을까도 토론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자식에게 그릇된 세상관을 비춰질까 염려되어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러한 생활이 반복되기도 몇 주, 그 이후로 나는 아마도 이 것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거나 내 초등학생의 관심을 사로잡은 새로운 흥미거리를 발견했다거나 하여 이 모든 것은잊혀진 과거의 일로 되어 버린다. 그리고는 무려 20여년이 지났다.

나는 몇 주일 전 어느 하루 라스 베가스로 출장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한 라스 베가스 정보 사이트에서 ‘꿈의 도시’라는 단어를 마주치게 된다. 나는 순간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던 과거의 일들이 하나 둘씩 생각나기 시작한다. 마치 옷장 구석에서 신발상자 안에 소중하게 보관해두었던 어렸을 적 사진과 일기장을 발견한 것만 같이 가슴 찡한 추억에 잠기게 된다. 초등학교 친구들. 미스 애비게일. 사회 수업. 라스 베가스. 꿈의 도시. 그리고 편지. 나는 반진심으로 한번 인터넷에서 와이트 페이지-라스 베가스를 가본다. 그리고 내 이름을 검색하여 본다. 결과 1명. ‘403 W Maryland Pkwy. Las Vegas, NV 89121.’ 나는 그날 한동안 컴퓨터 스크린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훌라스커트와 코코넛 브라를 한 웨이트레스가 내 앞에 새로운 위스키 잔을 놓는 순간 나는 생각에서 깨어난다. 그녀는 더 필요한 것이 없냐고 퉁명스럽게 물어본다. 나는 그녀의 복장을 보면서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다. 나는 고맙다고하고 팁을 준다. 순간 내 전화는 진동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발신자 번호를 보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바의 입구에는 베이지 색의 반팔 폴로 티셔츠를 입고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는 5,60대의 동양 남자가 귀에다가 전화기를 대고 바를 물색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는 나를 보고는 전화기를 끊고 나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어색하게 악수를 하고는 자리에 앉는다.

사람의 행동은 우리가 의식하는 것 이상으로 대부분 컨디션이 되어있다. 예전의 비슷한 사건이나 환경에 기반을 두어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대처를 한다. 하지만 평생 가까스로 비슷한 사건도 없는 전혀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였을 때에는 사람은 지도 없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나와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동명의 그 이와는 현재 서로의 삶에 참으로 독특하고 뚜렷한 행동의 좌표가 없는 사건을 겪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도 왜 내가 그에게 연락을 취했고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 만남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웃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시키려 한다.

“제 이상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나와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혹시 많은 폐를 끼치는게 아닌가 싶네요.”

“나도 처음에 연락을 받았을 때, 좀 뭐랄까, 이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몰라서 내 와이프와 상담을 했답니다.”

훌라스커트와 코코넛브라의 웨이트레스는 우리 테이블 곁으로 와서 그의 주문을 받는다. 그는 맥주 한병과 물을 시킨다.

“주소를 20년 동안 안바꾸신 것을 보고 이상하게 안심이 되더라구요.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근데 제 연락을 받으시고 어떤 이유로 절 만나시러 결심하셨습니까? 저같으면 이상한 놈이라고 무시했을텐데…”

“실은 내가 얼마전에 은퇴를 하여서 집에 보내는 시간이 많아 졌답니다. 그리하여서 이제 내 취미인 목공예에 전염할 수가 있게 되었어요. 하루는 제 스튜디오와 장비를 보관하는 창고를 모두 정리하다가 보니 옛날에 구석에 정리해둔 짐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나는 먼지쌓이고 오래된 그 잡동사니를 모두 버릴려고 살펴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 있어서 줏어보니 바로 이 것들이었답니다.”

그는 바닥에 두었던 가방에서 한 뭉터기의 낡은 종이들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논다. 나는 그 것들이 무엇인지 깨닳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리앉는다. 20여년 전에 내가 보내었던 편지들이다. 지금은 노랗게 바래고 가장자리가 닳은 상태로 내 앞에 있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나는 하나씩 조심히 펼쳐 든다. 서투르고 큼지막한 내 어렸을 적 글씨체가 내 눈에 들어온다. 편지 봉투에 발신자와 수신자가 내 이름으로 되어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봉투를 열어 편지지를 꺼내 본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제가 저번에 보낸 편지에 다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 또 보냅니다. 저에겐 요즘에 아무도 모르는 이상한 병이 있습니다. 밤에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있을 때, 만약 지금 잠이 들면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만약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지 못한다면 내가 가지고 싶고 하고싶은 모든 것들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저의 부모님도 많이 걱정하실 것 입니다. 저에게는 꿈이 많습니다. 제발 제가 이 모든 꿈들을 다 이루기 전까 영원한 잠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다른 편지 봉투 안에서 또 꺼내어 본다. 사진이다. 노을을 뒷 배경으로 하고 웃고 있는 내 사진이다. 나는 눈물이 핑 돈다. 그는 테이블의 건너편에서 말을 꺼냈다.

“처음에 우리가 이 편지들을 받았을 때, 나와 내 와이프는 잘못된 주소로 온 편지인 줄 알았어요. 두번째로 놀랬던 것은 알고 보니 애초에 우리에게 보낸 편지가 맞다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재밋기도 하였고 답장을 써야되나 생각도 해보았으나 뭐라고 써야될지도 모르겠고 해서 그냥 냅두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는 한국인 2세이었고 보스톤 출신이었다. 20대에 라스 베가스로 이주를 한 후에 여태까지 살아왔다고 한다. 나는 내 이름을 가진 이 낯선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나머지 밤을 보냈다.


Making a Moai Walk

아침에 눈을 떳을 때에는 순간 내가 어디인지 혼돈스러웠다. 초자연적인 고요함. 그 속에 들려오는 낯선 소리들. 자동차의 소음은 없었고, 분주한 인파의 소리도 없었으며, 자연의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적막은 나를 무겁고 숨막히게 누르지 않았고 단지 들려 올듯 말듯하는 소리에 귀기울게 만들었다. 나의 청각은 소리의 근원을 적극적으로 찾았지만 결국에는 포기하고 말았다. 빈 공간이란 것이 있을 수 없고, 무색이란 것이 있을 수 없듯이, 적막의 소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니면 공허함과 무의미를 용납할 수 없음에 내 심장의 소리가 들려온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머리를 들어 타이트 스탠드 위의 자명종 시계를 보았다. 디지털 시계는 오전 6시 2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자명종의 도움도 없이 일어날 수 있었던게 시차 적응이 안되어서 그런 것인지 섬을 탐험한다는 설레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불을 걷어 차고 일어서 앉았다. 방바닥의 찬 기운이 발바닥으로 시원하게 전달되었다. 나는 창가로 가서 커텐을 활작 열었다. 날이 짧은 8월이기에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섬은 어두움에 잠겨 있었다. 라파 뉴이 섬의 초원과 화산 봉우리가 두 개 보였다. 나는 재빨리 샤워를 하고 옷을 갖추어 입고 사진기, 지도, 다른 잡다한 것들을 집어들고 방을 나섰다.

아직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관광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사람이 이렇게 드믄 곳인지 로비를 가로질러 갈 때까지 눈에 보인 사람은 리셉션의 직원 밖에 없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니 그는 내 이름까지 기억하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호텔의 정문을 나서자 선선하고 푸른 바다 냄새가 상쾌하게 불어왔다. 이제는 섬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수평선의 윤곽이 조금씩 나타나는 것을 보며 나는 지구의 어느 곳보다도 먼 섬에 와 있다는 것을 기억하였다. 이 곳은 인적이 드믈을 수 밖에 없었다. 가장 가까운 땅은 이 곳에서 부터 이천 킬로가 넘었고, 그 것 마저도 섬이었다. 칠레의 대륙과는 3천 5백킬로나 떨어져 있다고한다.

나는 지대가 높은 곳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다. 땅은 대부분 잔디로 뒤덥혀 있었으나 군데군데 자갈밭도 많이 있었다. 사전 조사를 하여 등산화를 준비해 온 것이 참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돌맹이들의 크기로 보아 발목 부상을 당하기에 쉽상이었을 것이다. 이 돌맹이들은 애초에는 섬의 엄청난 부위를 차지하고 있기에 지질학적인 자연 현상으로 추정되었으나 훗날 연구 결과 옛 원주민들이 인위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이 것은 강한 햇볓을 막아주고 건조한 바람을 막아줄 숲이 없어서 농사를 하기 힘든 섬의 자연적인 한계를 이겨내려고 고안해낸 방법이라고 한다. 돌맹이들은 지면의 온도를 낮추고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원주민들의 억센 생명력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나는 재빨리 움직이는 발걸음을 따라잡으려 차오르는 숨을 느끼며 언덕 위를 향하여 갔다. 한참을 지나 뒤를 돌아보니 내가 묶고 있는 Posada de Mike Rapu 호텔이 저만침 밑에서 작게 보였다. 나는 근처에 큼지막한 바위를 찾아서 위에 걸터 앉았다. 바다를 향햐여 보니 해가 때에 맞게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대 태평양의 수평선에서 세기의 불쇼가 시작된것이다. 나는 마치 전열의 좌석에 앉은 것 처럼 내 가슴은 것잡을 수 없이 마구 뛰었다. 수평선 위로 붉게 타오르는 해는 어둠을 서서히 밀어내며 사방으로 물들이기 시작하였고 세상은 형용할 수 없는 푸른 청색을 띄었다. 햇빛이 아직 도달하지 않은 곳은 한없이 깊은 색을 띄고 있었고 우주의 낭떠러지가 보이는 듯 하였다. 태양에서부터 시작된 한가닥의 일광은 해면에 금으로 빛나는 길을 나에게 향하여 만들어 주었다. 일광을 타고 태양을 향해 질주하는 나를 상상하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태양신은 아직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니체에도 불구하고. 헤이데어에도 불구하고. 지구에서 부터 1억 5천 킬로미터의 거리에 있는 태양에서 부터 시작된 광파가 우주를 가로질러 바다의 분자에 반사된 후, 내 두되의 시각령을 어루만지는 이 어마어마한 현상은 나같이 한 없이 작은 존재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우주의 교향시다.

박명은 내 하루중에 얼마 지속되지 않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시간이다. 박명은 곧 내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수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창작으로 이어지는 영감이 나머지 아이디어와 구분될 수 있는 요소는 바로 가슴을 사로잡는 설레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아이디어의 원천이 어디냐고 누군가가 물었을 때, 그는 형용할 수 없지만 비유를 하자면 하늘에서 자신에게 말하는 목소리라고 밖에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내가 영감의 설레임을 비유하자면 형용할 수 없는 박명의 푸른 청색깔이다. 어떤 때는 보라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막 어두움이 거친 검푸른 색과 새로 치고 들어오는 붉은 색의 조합을 통해 탄생되는 특유의 보라색. 어떻게 묘사를 하던간에 내 가슴 속의 이 색깔은 나를 움직이게 하고 삶을 유지하게 한다.

해는 이제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들어내고 노랗게 타고 있었고 세상은 아침을 맞고 있었다. 내가 라파 뉴이에 오게 된 것은 얼마 전에 우연히 내 손안에 들어오게 된 라파뉴의 인류학자의 책을 읽게 된 것이 시초였다. 라파 뉴이의 역사와 유명한 모아이의 수수께끼를 접한 누구도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섬은 멀기도 멀지만 흔하게 가는 곳이 아니기에 이 여행에 대해 마음을 세우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 이 초원의 언덕위에서 사방을 대해로 둘러싸인 이 외로운 섬을 보면서 어쩌면 나는 이 곳을 오기로 결정한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의 접촉을 피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단독의 생활 속에서 평정을 찾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영향력을 벗어나고픈 욕망이 나를 계속하여 부추기어 결국 세상의 끄트머리까지 오게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내 인간 관계에 관한 철학을 재정립하려는 노력이 부끄럽지 않았다. 누구나 한번쯤은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규열짓는 것들을 도전해 보고 나에게 진실로 와닿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은 건강한 생각이라고 본다. Christopher McCandless의 실화에 기반을 두고 Jon Krakauer가 쓴 Into the Wild라는 책을 옛날에 읽은 적이 있다. 주인공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자마자 대학원을 위해 평생 저축한 돈을 모두 기부하고 자신의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모두 버린 후 알래스카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사냥을 하면서 산다. 그는 Henry H. Thoreau를 인용하며 인간 사회를 조롱한다. 하지만 그는 실수로 독초를 먹고 죽고 만다. 당시에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가 사회에 대해 느끼는 회의감을 공감하려 노력해 보았다. 많은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요건보다 과도하게 지나친 물질을 요구한다. 사회는 인간의 이러한 욕심을 충족하기 위하여 인간 관계를 계약적이고 조건적인 관계로 전락시킨다. 만약 인간의 물질적인 욕심을 모두 없애고, 생존과 단순한 삶에 완벽한 충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의 영혼을 씻는다면 인간의 관계는 어떠한 모습을 띌까? 인간의 관계는 과연 필요하긴 한 것인가? 아니면 물질적인 행복 이전에 존재하는 것인 인간 관계를 통한 행복인가?

나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엉덩이를 털었다. 나는 발걸음을 조심하며 호텔로 내려갔다. 아침이 무르익은 시간이어서 이제 사람들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호텔의 레스토랑으로 가서 아침을 베네딕트와 해쉬 브라우니로 해결하였다. 뜻밖에도 맛있는 아침이었다. 레스토랑 내의 사람들은 주로 관광 패키지로 와서 단체로 군데군데 모여있었다. 나와 같이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 하였다. 한 커플은 신혼인듯 사랑에 가득찬 눈빛을 교환하며 대화를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곧 내 스위트로 돌아와서 하루 종일 할 본격적인 탐험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나는 로비에서 쉽게 차를 렌트할 수 있었다. 가격은 생각보다 낮았고 안전한 지프를 빌렸다. 호텔의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20분 정도를 운전하니 드디어 기대하던 모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섬 전체에는 800여개의 모아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나는 몇개의 작은 모아이를 지나치다 놀라운 크기의 모아이 4개가 한 곳에 모여있는 곳에 발견하고 차를 세웟다. 이 모아이들은 적어도 6미터의 높이는 되는 듯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들은 Anu라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엄청난 크기의 암반 위에 서 있었다. 이들은 모두 바다쪽이 아닌 섬의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큰 얼굴과 몸에 붙은 작은 손들, 그리고 화산석으로 만들어진 모습이 하루방을 연상시켰다.

이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무슨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고 운송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이 것에 대한 원주민들의 기록은 아무것도 없었고 큰 질병을 겪어 대부분의 인구가 사망하였던 역사적인 사건에 의해 현존하는 모아이에 대한 전통이나 기억은 무엇도 없다고 한다. 학자들 발굴과 방사선 탄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법을 통해 많은 이론을 내놓았지만 모아이는 아직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80톤 가량이나 되는 무게를 가진 모아이가 이 제한된 자원의 섬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옮기어 졌는 것인가도 큰 미스테리이지만 이보다 더 큰 미스테리는 과연 생존하기에도 급급한 이 섬에서 왜 이렇게 엄청난 인적 자원을 사용하여 돌상들을 만들었었는가이다. 이 섬은 문명에 의해 들여와지기 전까지 가축이 드물었고, 농사를 짓기도 힘든 땅이다. 따라서 생존을 위하여 기울이지 않는 노력은 모두 큰 기회 비용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이 섬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대륙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예를들어 자신들의 생활 터전과 필요이상으로 먼 곳에서 부터 생존과 연관없는 물건들을 계속하여 수집하는 문화가 북미주에 한때 존재하였다고 한다. 아니면 동물을 사냥하기 전에 사냥물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하여 죽은 동물의 골반뼈를 쪼개어 생긴 금을 지도로 삼는 의식 절차도 한가지 예이다.

이 것에 대하여 한 인류학자는 이러한 이론을 내놓았다. 인간은 의식적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도 생존을 위한 노력을 한다고 한다. 때론 의식적으로 즉각적인 이해가 불가능한 것들도 알고 보면 인류의 오랫동안의 무의식적인 흐름에 의하여 빚어진 생존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된 사냥을 위한 의식 절차는 예를 들어 골반뼈의 랜돔한 금을 따름으로 인해 사냥물들의 대량학살이 예방되면서 인류의 생존을 돕는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모아이에 적용해 볼 때, 하나의 일관성있는 논리가 성립된다. 라파 뉴이섬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모든 대륙과 거리가 먼 외딴 섬이다. 이 곳에서 무작위로 인구가 증가된다면 자원이 고갈 될 것이거나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 일어나더라도 생존에는 장해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결과가 초래된다. 라파 뉴이의 민족은 모아이라는 엄청난 인적 자원을 요구하는 의식 절차를 그들의 생활의 큰 부분으로 구성한 것은 그들의 자원을 인구 증가를 위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한된 자원과 생존의 섬세하고도 연약한 균형은 이러한 무의식적인 노력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이다.

나는 모아이 옆에 Anu 위에 걸터 앉아서 모아이의 신비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웃지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지도 않는, 그렇다고 무표정이지도 않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한 때 이 섬의 지면을 걸었을 이들을 상상해 본다. 그리곤 현대의 우리 사회를 생각해 본다. 어쩌면 우리도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모아이를 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반을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고 나머지 반을 돈을 벌며 삶을 살려고 발버둥친다. 그 사이에 우리는 수많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끊으며 다시 회복하면서 지낸다. 우리의 야망, 열정, 욕망, 철학, 과학, 종교, 우정, 그리고 사랑,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단지 무의식적으로 생존을 위한 노력에 불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생명체의 진화로 인해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하고 의식이 존재하기 시작하기 전까지 지구는 의식이란 것이 없는 무의식의 세상이었다. 그 이후로 의식이란 것이 진화되고, 자아 의식이란 것이 진화되었으며 곳이어 현대 사회에 도달하게 된다. 앞으로 몇 세기 후에는, 또는 몇 만년 후에는 생존을 위해 인간 관계라는 무의식적인 생존의 노력도 같이 진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원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눈깜짝할 사이인 현대의 인간 관계의 정의는 무엇의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에게는 과연 이 더할 나이 없이 순간적인 인간 관계관, 도덕률 응하고 준수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세계에서 가장 먼 이 곳 땅에서 신비스로운 모아이 곁에 홀로 앉아 절대 외롭지도 그렇다고 절대 평정하고 행복하지도 않은 마음으로 나머지 섬과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바라본다.


The Endeavour Journal

불과 4시간 전만 해도 페루의 수도인 리마의 분주한 도심지의 한 가운데 있었다. 리마는 아메리카의 요리학 중심지라고 할 만큼 아프리카, 유럽, 중국, 일본의 영향을 받은 요리가 사회의 뿌리깊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리마의 문화적 다양함은 ‘치파’(Chifa)라는 미각의 형태로 나에게 실감을 주었다. 치파는 예전 중국 광동의 민족이 페루로 흘러왔을때 조국의 음식 재료를 찾을 수가 없어서 페루에서 찾을 수 있는 비슷한 재료로 만든 요리가 정형화되어 탄생된 퓨전 요리라고 한다. 나는 마지막 점심을 ‘Airport’(스페인어로 Aeropuerto)라는 특이한 이름의 치파와 맥주로 태평선이 보이는 한 아름다운 패티오에서 하였다. 이 요리는 야채와 닭고기가 들어간 볶음밥에 비행기와 유사한 모양을 뜬 튀김만두가 섞여 나오는 요리였다. 하지만 들어간 재료와 달리 맛은 일반 중국음식과 상당히 다름에 놀라웠다.

리마의 해변은 아름다웠다. 날씨는 구름한점 없었고 사람들은 이 곳 저 곳에서 평온하게 일광욕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으며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저멀리는 페루 국립교향악단이 연주를 하는 극장의 멋진 건축물이 보였다. 여러 뿌리 깊은 역사의 만남과 열정과 인간미가 넘치는 이 곳에서 홀로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바라 보았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함께 나눌 수 그 누구도 주변에 없었고, 이 음식의 기쁨을 나눌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나머지의 세계와 격리된 진공 상태의 내가 느끼는 현재 느끼는 것은 외로움이나 초라함이 아니라 죄책감이었다. 인생의 동반자의 필요성을 못느끼는 데서 비롯되는 죄책감. 홀로 있을 때 가장 나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느껴지고 가장 평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 지기 시작하였다. 주말에도 전화를 수화기에서 들어 놓고, 온라인의 소시얼 네트워킹도 소홀하게 되고, 단체 모임도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피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때 부터 시작된 것인지, 무슨 이유로 인지 정확히 손짚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무지개에서 주황색이 노란색되 변하듯, 내가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을 못하듯, 어느새 이렇게 변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무의식 적으로 시작된 이러한 행동의 변화가 의식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홀로 보내는 시간이 무엇보다 편할 뿐더러 일리가 있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타당하게 느껴졌다. 나는 소속되어 있던 아마추어 야구부에서 부터도 탈퇴하였고, 일부러 아무도 날 찾지 못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바르셀로나, 두번째는 모로코, 세번째는 이 곳의 도시 리마.

특정한 신념의 시작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것이다. 한 채식주의자가 논리적인 일련의 생각에 의해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내렸을 때, 그 생각을 애초에 심어준 공기 중에 날아다니던 영감의 바람, 그 바람은 어디서 날아 온 것이고, 또 그 사람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나님을 믿음의 도약을 통하여 굳건하게 붙잡고 있던 성도의 손이 서서히 느슨해지고 결국에는 논리의 귀납법 앞에 신이라는 존재가 정말 터무니 없게 보이기 되었을 때, 이 무신론자의 머리에 스쳐간 영감의 바람의 원천은 도대체 어디인가. 나에게도 불어온 영감의 바람은 내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마치 사람관계를 서서히 면하기 시작한 것은, 먼 곳에서부터 나에게로 달려오고 있는 바람을 내 몸이 스스로 감지하였던 것과도 같게 느껴진다.

4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소형 비행기를 타고 Rapa Nui를 향하여 가고 있다. 흔희 Easter Island로 불리우는 이 섬은 폴리네시아 중에서도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구의 끝’이다. 모든 곳과 동떨어진 태평양의 한 가운데 외롭게 있는 이 섬은 근래 들어 관광산업의 붐이 일으켜졌지만 그래도 이 곳을 향하여 가는 항공편은 일주일에 세번 밖에 없었다. 나는 3일을 리마에서 기다린 후에나 이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었다.

태평양이란 어렸을 적 부터 물장구를 치며 많이 접해 보았지만 실제로 이 바다가 지구의 가장 큰 면적을 덥고 있는 바다라는 것을 흔희 잊게 된다. Yann Martel의 The Life of Pi란 책을 읽으면서 한 소년이 구조요트를 타고 끊임없는 바다를 횡단한 것을 읽으며 그 숨막히는 거대함을 상상해 보았지만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그 스케일을 체험하기 힘들다. 폴리네시아도 남태평양의 한 부분인 오시아나에 불가하다는 것을 생각하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사방으로 끝없는 수평선을 비행기의 창밖으로 바라보다 보니 Rapa Nui는 곧 그의 신비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치 영국의 선장이자 탐험가 James Cook이 자신의 ‘The Endeavour Journal’ 기록하였듯이 처음 이 정체 불명의 섬에 도착하였을 때의 설레임과 긴장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섬에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야생동물이 초원을 거닐고 있을까. 인간은 이 곳에 정착한 흔적이 있을까. 있다면 원주민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은 호전적일까. 식인종이진 않을까. 아니면 우리를 호의적으로 환영할까.

일단 상공에서 보이는 섬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대략 서울의 4분의 1 크기정도 밖에 안한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 걸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나무는 듬성듬성 있어서 많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진 않았고 푸른 초원과 몇개의 낮은 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간이 처음 이 곳에 발을 디딘 것은 불과 1세기 전이었고 그 이후로 300여년 전까지 세계의 나머지 문명과 거의 두절된 문명을 이끌어 나간 곳이 이 곳이다.

비행기는 섬의 유일한 활주로에 맟추어 나란하게 자신을 정렬시키고 서서히 고도를 낯추더니 사뿐하게 아스팔트 위에 착지하였다. 마타베리 공항은 70년도에 건축되었고 정식으로 상업적인 항공편도가 성립된 된 것은 불과 80년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그 이전에는 사람의 왕도가 극히 드믄 곳이었다. 비행기를 하차하여 처음 땅을 밟았을 때 선선한 바닷바람이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8월이기에 이 곳은 현재 한참 겨울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피부로 느끼기에 섭씨 20도 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았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아이폰을 꺼내 온도를 확인하려하였지만 이 곳은 3G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였다.

나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 짐을 찾고 간단하게 세관을 통과한 다음 공항의 입구로 갔다. 택시로 보이는 낡은 차를 타고 내가 묶을 호텔로 이동하였다. 택시 기사는 남미 민족과 비슷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고 특히 농촌 시골 총각처럼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나에게 천연득 스럽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극히 드믄 민족의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마치 그가 대화 중에 인간의 숨겨진 비밀이라도 알려줄 듯이 나는 신기해 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름은 ‘존’이었다. 실망스러운 말투로 그에게 본명이 있냐고 물으니 ‘메라히’라고 알려주었다. 그가 나에게 궁금함 못지 않게 나도 그에게 하고 싶은 수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우리의 이동 시간은 금새 끝나 버렸다. 인터넷으로 사전 조사를 하였을 때 3불 고정 요금으로 섬의 어느 곳에도 갈 수 있다고 하였으나 존은 호텔 정문에 도달하였을 때 5불을 요구하였다. 바가지는 인간의 편재하는 본성인가 보다 하고 생각되었다. 나는 ‘마누이아!’라고 하면서 그에게 흔쾌히 지불하였다. 마누이아는 라마 누이어로 ‘당신의 건강을 위하여’라는 뜻이라고 한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Posada de Mike Rapu라는 정교한 건축 양식의 아름다운 호텔이었다. 섬에는 재료가 없는바로 모든 건축 자료는 칠레에서 수입하여 왔다고 한다. 로비로 들어서자 전신 유리를 통하여 탁트인 섬의 경치를 볼 수 있었다. 나는 호텔의 아늑함 속에 고되고 긴 여정의 피곤함이 쏟아지는 것을 갑자기 느꼈다. 나는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인도되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섬의 신비로움과 알 수 없는 내일의 신비로움은 서로 뒤죽박죽 엉키어 하나의 큰 설레임으로 남았다.


The Invisible Sports

아담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와 같은 18세기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완벽하게 계산적이고, 감정에 요동되지 않는 냉정함을 지니고, 항상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추구하는 동물이라고 여기었다. 이들 이론의 세상은 미래의 추측이 가능하였고, 간단한 공식으로 수량화하여 그래프 속에 담을 수 있었으며, 모든 것들은 평형 상태를 향하여 움직였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정적 평형 상태, 즉 이쿠이리브리엄은 경제 시장에서 모든 힘의 합이 0이 되는 상태로써 실제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론적 개념에 불가하다.

잇따라 인간과 세상의 복잡하고 다변수적인 면을 반영하려는 노력으로 인해 나타난 파가 바로 행동 경제학이다. 이 중에 대표적인 심리학자 칸만과 트버스키는 인간의 이성은 자신감, 믿음, 두려움, 탐욕등과 감정에 엮여져 있음을 인정하고 이러한 감정이 이성적인 판단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였다. 이들은 인간의 감정적인 경향으로 인해 세상은 평형 상태로 움직인다기 보다 경제적 거품 현상, 서브프라임모기지 불황, 전쟁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인간의 복잡함과 세상의 많은 변수를 한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포츠일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성공의 공식을 수없이 재탕하여 결말이 뻔한 드라마나 식상함이 가득한 깊이 없는 캐릭터들을 거부하고 예측이 힘들고 변수가 많은 리얼리티쇼가 많은 유행을 얻었다. 그 중에 스포츠야 말로 리얼리티 중의 리얼리티, 각본이 없는 드라마 아닌가. 축구의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고, 슈터의 손을 떠난 농구공은 골대의 어느 곳에 맞을 것인지 모르는 일이다. 투수의 어깨근육에서 시작되어 공기를 가르고 날아오는 조그마한 야구공이 가는 야구 배트를 맞을 때까지 작용되는 자연의 힘과 법칙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개개인 체력과 컨디션, 그리고 이들의 장단점을 가만하여 짜여진 작전의 순열은 경기의 불규칙함을 더한다. 세상의 캐리커처, 또는 소우주와 같은 운동 경기장은 우리와 선수들을 동심일체 시켜주고, 그들의 우승과 패배 속에 우리는 함께 울고 웃는다.

이렇게 많은 인구가 사회적 현상처럼 모이는 곳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 것은 바로 돈이다. 그렇다. 열광하는 팬들의 충성심과 목이 터져라 외쳐되는 응원가는 모두 금전화된다. 미국 스포츠 산업에서 티켓 판매, 광고 수입, 각종 협찬, 중계 라이센스, 스포츠 상품의 판매를 통한 한해 매출은 왠만한 발전국가의 GDP를 훨씬 능가한다. 대략 NFL은 90만불, MLB는 70만불, NBA는 38만불, 등 이런 식이다. 아테네의 신들 앞에서 공정함과 인간의 기량을 뽐내던 스포츠라고 민주주의 자유 경제시장의 원리에 벗어날 수 없다. 돈이 많은 구단일 수록 기술 높은 인재를 영입할 수 있고, 더욱 훌륭한 훈련 시설을 갇추며, 승률을 높일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리얼리티를 잘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만약 이렇게 거대한 자금들이 오가는 화폐의 하이웨이에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면 어떻겠는가. 단지 많은 돈이 오가니 누군가는 어디선가에서 부자가 되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에서 그치지 말고,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겠는가. 이러한 심리가 적용된 것이 바로 스포츠 베팅이다. 스포츠 베팅의 개념은 닭싸움과 같이 고전 부터 즐겨온 것이라서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근대 한국에 합법화 되고 대중의 인기를 얻은 것은 근래에 불가하다.

하지만 스포츠 베팅의 매력은 금전적인 것에서 결코 멈추지 않는다. 스포츠에서 실제 경기는 빙산 일각에 불가하다. 우리는 선수들의 초인적인 집중력, 폭팔적인 에너지, 현란한 기술, 용기, 승부욕, 경기를 읽는 두뇌, 팀 일원들과의 환상적인 호흡 등에 매혹된다. 이러한 캐릭터는 순간적이고 반사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의도적으로 가장하거나 과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정직한 덕목이다. 이러한 것은 선수들의 피땀이 섞인 연습과 훈련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고, 그들의 타고난 천재성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선수라는 한 인간을 구성하는 뿌리 깊은 무의식과 됨됨이이다. 이들은 우리가 어렸을 적 우리로 하여게끔 세상의 하찮은 물리적 제재 따위를 극복하게 해주고 지구를 정복할 수 있는 이상적인 또 다른 자아를 허용하였던 슈퍼맨과 배트맨과 같은 영웅상이 의인화 된 것이다. 그들의 경기장 위의 삶 뿐만 아니라 부상/재활이나 은퇴와 같은 나머지 삶에도 관심을 보이고 마치 좋은 친구 처럼, 또는 자식처럼, 우리의 삶의 긴밀한 한 부분이 된다. 더 나아가, 감독의 입장에서, 또는 구단주의 입장에서, 선수들의 거래, 연봉 협상, 작전, 선발/후발의 여지, 리그의 제도 등도 큰 관심거리가 된다.

스포츠 베팅은 이러한 요소들을 기반을 두고 경기를 관람하는 팬들의 경기를 읽는 통찰력과 직관력, 선수들에 대한 믿음과 충성심, 그리고 불확실하고 변수가 많은 미지의 미래를 예견하고자 하고픈 욕망을 자극하고 증폭시킨다.

문제는 이러한 스포츠 베팅이 간혹가다 경기장 안에까지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다.

나는 몇년전 한 광고주의 애절한 부탁에 인하여 한 선수와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다. 나는 주선 후 자리를 비워주었기에 광고 계약이 무산되었다는 것 밖에 둘 간의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나 나는 그 것이 순수한 목적의 모임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얼떨결에 브로커로써 연류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바로 내 변호사과 상담을 하였고 검찰에 신고를 하였다. 스포츠 연맹과 위원회의 협조를 받으며 조사에 착수한 이후 모든 것이 밝혀 지었고 처벌될 당사자는 모두 체포되었다. 훗날에 이 블로그에서 이 사건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할 날이 올 것이다.


Lost in Time

상상해보라. 당신은 아침 식사 중이다. 여느 때와 별 다를 것 없는 메뉴, 여느 때와 별 다를 것 없을 일상. 예고없이 핸드폰이 울린다. 지금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발신자 표시가 제한되어 있다. 또 전화 통신 판매원이겠구나 무시하려다가 혹시 몰라서 일단 받아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바쁜 아침 시간에 죄송합니다. 지금 잠깐 시간 되십니까?”

“누구시죠?”

“예 저는 국정원 서울 지부장입니다. 좀 의례에 어긋날 수도 있으나 저희 운전사가 지금 댁의 집 앞에 대기 중입니다. 실례가 되시더라도 오늘 하루 일정을 취소하시고 저희와 함께하시면 좋겠습니다.”

“네? 누구라구요?”

“네, 제 요원이 곧 모시러 갈껍니다. 자세한 내용은 차차 설명해 드릴테니 일단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초인종이 우렸다. 나는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의아해 하였지만 일단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두 건장한 남자 두명이 서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일단 저희와 함께 하시죠. 지금 국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어리둥절한 마음에 저항할 겨를도 없이 집앞에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검은 세단으로 인도되었다. 나는 뒷자석 가운데 앉혀지고, 정장의 두 남자는 내 양옆에 앉았다. 아침시간 교통체증을 피해 신기할 정도로 고속 도로 구비구비 운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대화 한마디 없었다. 마침내 출구로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대략 헌인릉 근처인 듯 싶었다. 우리는 별모양과 ‘대한민국 국가 정보원 National Intelligent Service”의 글씨가 팻말을 둘러싸고 있는 한 건문소에서 간단한 조회를 한 후, 울타리로 둘러싸인 지구 내로 진입하였다.

나는 곧 회색빛 건물 내로 인도되었고 엘리베이터는 3층에서 멈추었다. 칙칙하고 적막한 복도는 우리의 발걸음 소리로 채워졌다. 두 정장남 중의 키큰 한 명이 한 사무실 앞의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주위 깊게 둘러보았으나 문에서나 복도 어느 곳에도 부서의 이름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대신 302호, 303호 따위의 번호로 표기되어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3,4 명의 직원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사무실을 거쳐서 깊숙하게 위치하고 있는 불투명 유리의 사무실 앞에 도달하였다. 이번에도 키큰 정장남이 노크를 하고, 우리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는 회색 머리의 중년 남자가 갈색 사무용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안녕하십니까. 바쁜 와정에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까 통화했던 서울 지부장 김성록이라고 합니다.”

“아 예…. 근데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있으신거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죠?”

“예 지금 부터 여기서 이야기 되는 모든 것은 일단 국가 정보 원법 제 3조에 인하여 철저히 비밀로 하여야 하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만약 어길시 특별범죄가중처벌죄로 최소 징역 3년임을 미리 말해 둡니다. 아시겠습니까?

“네?…네..”

“저는 과학 기술 담당 부국장님의 위임으로 중요한 국가 기밀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이 모든 절차는 기밀이 누설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대한 민국 현 헌법 내에서 합법적인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그는 앉아 있던 사무실용 가죽의자를 회전하여 사무실 구석에 위치한 금고에서 한 문서 꾸러미를 꺼내어 내 앞에 놓았다. 나는 문서의 첫 표지를 내려다 보았다. 정 가운데에는 ‘시간’이라는 단어가 덩그러니 씌여 있었고, 구석에는 ‘특급비밀’이라는 빨간색의 글씨가 씌어있었다.

“이게… 뭐죠?”

“시간이란 것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이죠. 오랜 세월 동안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였고 현시대에도 중요한 개념으로 남아있는 미스테리의 소재 입니다. 시간은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도 하고 사건들 사이의 간격과 그 지속 기간에 대한 양으로 생각되어 오기도 합니다.
시간이 왜 흘러가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우리는 추측을 할 뿐입니다. 그 설명 중의 하나는 엔트로피, 즉 열역학계의 함수 상태 입니다.”

“이게 지금 저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당신이 태어났을 때, 아니 태어나기 이전 부터 당신은 이 시간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태어난 이후 시간은 당신이 숨쉬는 일분 일초와 함께 하였고, 당신의 가장 은밀한 순간도, 당신의 가장 공적인 순간도 같이 있었습니다. 당신 집의 옷장 안에도 발견되었고, 잠자는 시간에도 존재합니다. 당신의 성장을 정의하였을 뿐더러, 당신의 사랑, 열정, 상처, 생각, 감정, 모든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는 인위적인 법칙에 국한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래는 현재의 잠재적인 상태이고, 과거는 어느 곳으론가 사라집니다. 시간은 당신의 존재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시간은 우주의 법칙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입니다. 지구의 자전과 태양 주위를 도는 궤도, 은하계의 움직임과 우주의 팽창. 별의 탄생과 블랙홀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오랫동안 지켜와 보았지만 어떻게 이 것이 가능한 것인지 도대체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에게 물어볼 수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사무실 안은 적막과 보이지 않는 시간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 후에 그는 나에게 또박또박 물어보았다.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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