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lexion Ete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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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마이가든



City of Dreams

네바다 주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라스 베가스는 황량하고 어두컴컴한 사막하늘을 외롭게 밝히고 있다. 이 곳은 10월이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후덕지근하다. 저녁의 이 시간 온도가 섭씨 30도를 훌쩍 넘는다. 하루종일 달구어진 사막 지면에서부터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이 시내를 스쳐지나간다. 카지노와 호텔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부터 화려한 네온 사인들이 라스 베가스 블레바드, 일명 ‘스트립’을 가운데로 두고 양쪽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길가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끊임없이 밤을 쫒으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 보인다. 동양인, 중동인, 유태인, 흑인, 관광객, 길거리 상인, 프로모터, 총각파티, 소매치기꾼, 사기꾼, 창녀, 종교인, 경찰, 주민 등등 복합적이고 다이내믹한 인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곳은 어느 누구와도 완벽한 낯선이가 될 수 있고, 어느 누구와도 친한 벗이 될 수 있으며, 가장 자기 자신이 허용되는 곳이고, 또한 평소와 전혀 다른 또다른 내가 되어도 되는 곳이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매춘이 허용되는 곳이고 결혼법이 가장 수월한 곳이며 실내에서도 흡연이 가능하기도 하다. 종종 한 손에 버젓이 마가리타나 맥주를 들고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신비스러운 이 곳을 마치 Aldous Huxley의 Brave New World에서 미개인이 유토피아의 문명 세계에 도달하였을 때의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는 유치한 하와이의 훌라 스커트와 코코넛 브라를 한 웨이트레스에게 신호를 하여 내 앞에 있던 오반 위스키 한잔을 더 시킨다. 라스 베가스 블레바드의 길가의 페티오에 앉아 있자니 축제 분위기의 나도 모르게 감염되는 듯 싶다. 나는 출장의 모든 일정도 끝났겠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다리를 쭉 뻗고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댄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제대로 놓을 수 없다. 나는 위스키잔에서 얼음을 꺼내 입에 넣고 깨물어 부신다. 손목의 시계를 내려다 보니 8시가 막 지나고 있다. 이제 곳 그는 나타날 것이다. 전화를 통해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중년의 남자 목소리와도 같았다.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네바다 주는 미국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다고도 한다. 내가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가 후회해본다. 지금이라도 자리를 일어나서 나가면 모든 것이 없던 일로 할 수도 있다.

일단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한 발자국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과거로 거슬러 가보자. 때는 초등학교 시절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번씩 사회수업을 들었다. 당시 사회 선생님의 이름은 미스 애비게일이었다. 그녀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정도의 덩치가 어느정도 좀 있으시고 무서웠던 여인로 기억된다. 그녀는 선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학생에게는 가참없이 벌을 내리셨고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려는 노력 조차 하지 않으셨다. 수업 밖에서는 우리와 말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신 적이 없을 정도로 차가우신 분이였다. 하지만 그녀의 수업만은 흥미로웠다. 우리는 주로 미국의 문화와 역사를 다루었고, 지역의 이름과 특징에 대하여서도 배웠다. 나는 특히 미국의 여러 지역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녀의 가리키는 방식은 교실의 한 쪽 벽에 큰 부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전지도의 한 곳을 가리키고 그 곳에 관한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자세한 부연 설명을 해주시는 것이었다. 멀티미디어 시스템도 없었고 오버헤드 프로젝터도 없었지만 지도와 사진들을 보며 나는 이 좁은 교실 내에서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기분이었고 눈에 보이는 내 주변 환경 말고도 까마득히 먼 곳에도 우리와 같이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신비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유타의 설트 레이크 스프링에 대하여서도 배웠고 미드웨스트의 미시시피 강에 대하여서도 배웠다. 로드 아일랜드의 뉴포트 시에 대하여 배울 때 어마어마한 역사적 저택의 사진들을 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느 하루는 라스 베가스에 대하여 배웠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에 라스 베가스는 서쪽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라던지 기차길의 마을로 번창했다던지에 대하여서 배웠다. 그리고 도박이 합법화 되면서 부터 카지노 산업이 커지게 되면서 지금의 라스 베가스가 형성된 것에 대하여 배웠다. 애비게일 선생님은 라스 베가스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이루어 주는 ‘꿈의 도시’라고 일컬인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 당시 그녀가 왜 ‘죄악의 도시’, ‘두번째 기회의 수도’, ‘유흥의 캐피탈’ 등과 같이 수많은 수식어 중에서도 꿈의 도시만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이후로도 우리가 라스 베가스에 대한 주제가 떠오늘 때면 그녀는 항상 꿈의 도시라고 부르곤 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당시 어린 마음에 라스 베가스란 도시는 산타의 엘프와 같은 특정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세계 사람들의 꿈을 상담하여 주고 현실화 시켜주는 곳이라고 이해하였었다. 하긴 누구도 혼자의 힘으로 소꿉장난과 공놀이로 이루어진 아동의 세계에서 비행기를 만들고 건물을 지으며 사람의 병을 고치는 어른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두 세계의 거리는 비현실적으로 멀어 보였다. 세계의 어느 곳에선가 이러한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관이 있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설명으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정확히 어떠한 방식으로 꿈이 현실화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고 나의 꿈을어떻게 그들에게 알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로지 나에게는 내 꿈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밖에 없었다. 미스 애비게일께 여쭤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부모님께 여쩌보았을 때 그들마저 속이 시원한 해답을 주시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그날 이후로 나는 무작정 라스 베가스의 주소를 찾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이 없던 당시에 이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였다. 신문과 잡지, 엽서, 지도, 책, 티비, 전화번호부를 뒤져가며 라스 베가스의 주소를 찾으려 하였다. 어느 하루 나는 한 도서관에서 우연히 라스 베가스의 화이트 페이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몸뚱아리 만한 무겁고 두꺼워서 들기조차 힘든 책을 나는 도서관의 한 구석 바닥에 앉아서 들쳐보기 시작하였다.

나는 라스 베가스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을지 몰랐었다. 그리고 이 많은 숫자의 사람들은 모두 라스 베가스의 주소를 가지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희망과 꿈을 이루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인가. 한 사람의 꿈을 성취하게 해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혹시나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이도 있을까 하여 찾아 보았다. 흔하지 않은 이름이기에 나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단 한명있었다. 바로 옆에 씌여있는 주소는 ‘403 W Maryland Pkwy. Las Vegas, NV 89121’이었다. 나는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주소를 옮겨적었다.

나는 그날 저녁 내 방에서 부모님 몰래 편지지에 나의 소개와 편지를 쓰게된 내역과 나의 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한참 써내려가다 보니 교회에서 배운 기도의 형식이랑 비슷하게 되어가는 듯도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보면 교회에서 섬기는 하나님과 그리 다를 바도 없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열씸이 써서 끝내었을 때에는 한장의 편지가 다득 메꾸어져 있었다. 나는 거실에서 예전에 보았던 편지 봉투들과 우표가 보관되어 있는 서랍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와서 내 편지를 조심히 접어 넣었다. 봉투를 봉할려는 찰라에 나는 이들은 아마 나와 같은 편지를 수도 없이 많이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기에 손을 멈추었다. 나는 내 사진 앨범에서 내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봉투에 담았다. 내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고 뒤로는 노란 석양이 지고 있는 내가 아끼는 사진이었다. 그리고는 편지 봉투를 단단히 봉하고 책가방 속에 넣어 두었다.

다음날 나는 어머니께서 학교로 데려다 주는 차의 뒷좌석에 앉아서 창문 밖을 바라보며 열씸히 빨간 우체통을 찾았다. 평소에는 그리 많아 보이던 우체통이 오늘따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운전을 하시며 나에게 계속하여 말을 하셨지만 나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기어코 나에게 뭘 그리 보고 있냐고 물으시는 찰나에 나는 빨간 우체통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어머니께 지금 당장 차를 세워야한다고 절박하게 애걸하였다. 어머니는 내가 차멀미를 하는 것인지 아시고 차를 당장 길가로 세우셨다. 나는 책가방을 들고 재빨리 우체통으로 뛰어가서 편지를 넣고는 차로 돌아왔다. 어이둥절한 표정으로 차 밖에서 나를 바라보며 기다리시는 어머니에게 나는 꿈의 도시에 편지를 보내야 했다고 어머니는 이해 못하실 것이라고 설명드렸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원하였던 모든 말을 그 한 편지에 전부 담지 못하였다는 것을 깨닳았다. 그리하여 나는 내 꿈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한 편지를 보내고 나면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기에 나는 새로운 편지를 써 보내곤 하였다. 학교 근처에도 빨간 우체통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로는 이러한 절차가 한결 수월해졌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매일 집의 편지함으로 직행하여서 나에게 온 것은 없나하고 확인하곤 하였다. 하지만 나는 실망스럽게도 동명의 그 사람에게서 온 답장은 매번 없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다른 이에게 보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바쁜 것인가하고 추정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모님은 나의 이러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고 내가 잠이 들곤 하면 내 편지도 확인하셨다곤 한다. 요즘 세상에 초등학생 자식이 온라인에서 누구와 채팅을 하는지 부모가 알아야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었다. 그 당시 부모님은 나 몰래 편지함에 답장을 넣을까도 토론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자식에게 그릇된 세상관을 비춰질까 염려되어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러한 생활이 반복되기도 몇 주, 그 이후로 나는 아마도 이 것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거나 내 초등학생의 관심을 사로잡은 새로운 흥미거리를 발견했다거나 하여 이 모든 것은잊혀진 과거의 일로 되어 버린다. 그리고는 무려 20여년이 지났다.

나는 몇 주일 전 어느 하루 라스 베가스로 출장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한 라스 베가스 정보 사이트에서 ‘꿈의 도시’라는 단어를 마주치게 된다. 나는 순간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던 과거의 일들이 하나 둘씩 생각나기 시작한다. 마치 옷장 구석에서 신발상자 안에 소중하게 보관해두었던 어렸을 적 사진과 일기장을 발견한 것만 같이 가슴 찡한 추억에 잠기게 된다. 초등학교 친구들. 미스 애비게일. 사회 수업. 라스 베가스. 꿈의 도시. 그리고 편지. 나는 반진심으로 한번 인터넷에서 와이트 페이지-라스 베가스를 가본다. 그리고 내 이름을 검색하여 본다. 결과 1명. ‘403 W Maryland Pkwy. Las Vegas, NV 89121.’ 나는 그날 한동안 컴퓨터 스크린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훌라스커트와 코코넛 브라를 한 웨이트레스가 내 앞에 새로운 위스키 잔을 놓는 순간 나는 생각에서 깨어난다. 그녀는 더 필요한 것이 없냐고 퉁명스럽게 물어본다. 나는 그녀의 복장을 보면서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다. 나는 고맙다고하고 팁을 준다. 순간 내 전화는 진동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발신자 번호를 보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바의 입구에는 베이지 색의 반팔 폴로 티셔츠를 입고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는 5,60대의 동양 남자가 귀에다가 전화기를 대고 바를 물색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는 나를 보고는 전화기를 끊고 나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어색하게 악수를 하고는 자리에 앉는다.

사람의 행동은 우리가 의식하는 것 이상으로 대부분 컨디션이 되어있다. 예전의 비슷한 사건이나 환경에 기반을 두어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대처를 한다. 하지만 평생 가까스로 비슷한 사건도 없는 전혀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였을 때에는 사람은 지도 없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나와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동명의 그 이와는 현재 서로의 삶에 참으로 독특하고 뚜렷한 행동의 좌표가 없는 사건을 겪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도 왜 내가 그에게 연락을 취했고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 만남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웃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시키려 한다.

“제 이상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나와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혹시 많은 폐를 끼치는게 아닌가 싶네요.”

“나도 처음에 연락을 받았을 때, 좀 뭐랄까, 이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몰라서 내 와이프와 상담을 했답니다.”

훌라스커트와 코코넛브라의 웨이트레스는 우리 테이블 곁으로 와서 그의 주문을 받는다. 그는 맥주 한병과 물을 시킨다.

“주소를 20년 동안 안바꾸신 것을 보고 이상하게 안심이 되더라구요.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근데 제 연락을 받으시고 어떤 이유로 절 만나시러 결심하셨습니까? 저같으면 이상한 놈이라고 무시했을텐데…”

“실은 내가 얼마전에 은퇴를 하여서 집에 보내는 시간이 많아 졌답니다. 그리하여서 이제 내 취미인 목공예에 전염할 수가 있게 되었어요. 하루는 제 스튜디오와 장비를 보관하는 창고를 모두 정리하다가 보니 옛날에 구석에 정리해둔 짐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나는 먼지쌓이고 오래된 그 잡동사니를 모두 버릴려고 살펴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 있어서 줏어보니 바로 이 것들이었답니다.”

그는 바닥에 두었던 가방에서 한 뭉터기의 낡은 종이들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논다. 나는 그 것들이 무엇인지 깨닳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리앉는다. 20여년 전에 내가 보내었던 편지들이다. 지금은 노랗게 바래고 가장자리가 닳은 상태로 내 앞에 있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나는 하나씩 조심히 펼쳐 든다. 서투르고 큼지막한 내 어렸을 적 글씨체가 내 눈에 들어온다. 편지 봉투에 발신자와 수신자가 내 이름으로 되어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봉투를 열어 편지지를 꺼내 본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제가 저번에 보낸 편지에 다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 또 보냅니다. 저에겐 요즘에 아무도 모르는 이상한 병이 있습니다. 밤에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있을 때, 만약 지금 잠이 들면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만약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지 못한다면 내가 가지고 싶고 하고싶은 모든 것들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저의 부모님도 많이 걱정하실 것 입니다. 저에게는 꿈이 많습니다. 제발 제가 이 모든 꿈들을 다 이루기 전까 영원한 잠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다른 편지 봉투 안에서 또 꺼내어 본다. 사진이다. 노을을 뒷 배경으로 하고 웃고 있는 내 사진이다. 나는 눈물이 핑 돈다. 그는 테이블의 건너편에서 말을 꺼냈다.

“처음에 우리가 이 편지들을 받았을 때, 나와 내 와이프는 잘못된 주소로 온 편지인 줄 알았어요. 두번째로 놀랬던 것은 알고 보니 애초에 우리에게 보낸 편지가 맞다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재밋기도 하였고 답장을 써야되나 생각도 해보았으나 뭐라고 써야될지도 모르겠고 해서 그냥 냅두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는 한국인 2세이었고 보스톤 출신이었다. 20대에 라스 베가스로 이주를 한 후에 여태까지 살아왔다고 한다. 나는 내 이름을 가진 이 낯선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나머지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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